문화

영화 《암살자(들)》은 왜 이렇게 시끄러운가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시 꺼낸 영화. 확인된 역사, 영화적 가설, 역사왜곡 논란과 제작진 반론을 분리해 봤습니다.

영화 암살자(들)의 역사와 영화적 가설 사이 논쟁을 표현한 자체 제작 그래픽
영화의 실제 포스터가 아니라 논쟁의 구조를 설명하려고 만든 자체 그래픽입니다.

영화보다 더 크게 번진 질문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은 2026년 9월 23일 개봉했습니다. 유해진은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철구, 박해일은 신문사 사회부장 재환, 이민호는 신입 기자 영일을 맡았습니다.

흥행 출발도 빨랐습니다. 배급사 집계에 따르면 개봉 나흘째인 9월 26일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넘겼고, 추석 연휴에는 약 140만 명을 모으며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습니다. 연합뉴스 9월 26일 보도와 9월 28일 박스오피스 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 자체의 흥행보다 더 크게 번진 것이 있습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어디까지 영화적 상상력으로 다시 구성할 수 있느냐는 논쟁입니다.

먼저 1974년 사건에서 확인되는 것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겨냥해 권총을 발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육영수 여사와 장봉화 양이 숨졌습니다.

문세광은 체포된 뒤 재판을 거쳐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문세광의 배후로 조총련과 북한을 지목했습니다. 다만 일본 측 조사에서는 북한이나 조총련이 직접 배후였다는 점을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이런 배경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8·15저격사건 항목에 정리돼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여기입니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과 문세광의 범행은 역사 기록으로 확인되지만, 당시 배후에 관한 한일 양국의 판단까지 완전히 같았던 것은 아닙니다.

제목이 왜 ‘암살자’가 아니라 ‘암살자(들)’인가

영화는 이 역사적 사건을 그대로 재연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형사와 기자들이 사건 현장의 모순과 증언의 빈틈을 추적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의심하는 미스터리 구조를 택했습니다.

제목도 단수형 《암살자》가 아니라 괄호가 붙은 복수형 《암살자(들)》입니다. 이 제목과 극 중 일부 가설 때문에 개봉 직후 역사왜곡 논란이 커졌습니다.

비판하는 쪽의 주장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문세광 외 다른 암살 주체가 있었던 것처럼 보이게 하고, 일부 장면이 박정희 정권이나 중앙정보부가 사건과 관련됐을 가능성을 관객에게 암시한다는 것입니다.

이종배 국민의힘 전 서울시의원은 9월 29일 허진호 감독과 제작진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습니다. 다만 9월 30일 현재 이는 고발이 접수된 단계이며, 혐의가 법적으로 인정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관련 내용과 고발인의 주장은 연합뉴스 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작진은 “특정 배후를 사실로 제시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제작진의 설명은 다릅니다. 하이브미디어코프는 역사왜곡 비판이 커지자 이 작품이 1974년 사건과 관련한 여러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극영화라고 밝혔습니다.

또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고, 영화 속 가설과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제작진의 입장은 9월 28일 연합뉴스 보도에 담겨 있습니다.

허진호 감독도 개봉 전 인터뷰에서 비슷한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사건 배후를 둘러싼 여러 가설을 자신이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맞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결론을 열어둔 채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을 그리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씨네21의 허진호 감독 인터뷰에서도 사건의 결론보다 인물과 신념에 초점을 두었다는 설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논쟁은 ‘사실이냐 허구냐’보다 조금 복잡하다

여기서 두 문장을 구분해야 합니다.

당시 사건에 배후를 둘러싼 논쟁과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영화가 제시하는 특정 가설이 역사적으로 입증됐다.

이 둘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첫 번째는 당시 기록과 양국의 서로 다른 판단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두 번째는 영화가 극적 상상력으로 구성한 영역까지 포함합니다.

반대로 영화가 화면에서 어떤 가능성을 강하게 보여준다면 제작진이 “허구”라고 설명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장면이 관객에게 주는 역사적 인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 인물과 실제 사망 사건을 다루는 역사극에서 계속 반복되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흥행과 평점도 논쟁의 영향을 함께 받고 있다

《암살자(들)》은 개봉 첫날 약 13만 명으로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개봉 뒤 닷새 동안 정상을 유지했습니다. 9월 28일에는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 약 1천 명 차이로 1위를 내줬습니다. 개봉 첫날 집계와 9월 29일 집계를 보면 두 작품의 경쟁이 상당히 가까웠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평점 역시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와 역사적 해석을 둘러싼 평가가 뒤섞여 있습니다. 9월 28일 제작진 입장을 다룬 연합뉴스는 당시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이 10점 만점에 8.4점인 반면, 네티즌 평점은 2.4점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이 수치만으로 어느 쪽이 더 정확한 영화 평가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참여 조건과 평가 동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작품의 연출·연기와 별개로 역사적 해석 자체가 평점에 강하게 반영되고 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볼 때 무엇을 구분해야 할까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을 이해하려면 세 층을 따로 보는 편이 낫습니다.

첫째는 1974년 8·15 저격 사건에서 기록으로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당시부터 이어진 배후에 관한 서로 다른 판단과 의혹입니다. 셋째는 영화가 그 빈 공간을 극적으로 채우기 위해 만든 가설과 인물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한 화면 안에 섞이면서 지금의 논쟁이 만들어졌습니다.

영화가 특정 배후를 사실이라고 확정했다는 제작진의 표현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동시에 실제 역사적 인물을 둘러싼 강한 가설을 시각적으로 제시했을 때 관객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는지는 별도의 문제로 남습니다.

그래서 《암살자(들)》을 둘러싼 가장 큰 질문은 단순히 “역사왜곡인가 아닌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실제 역사의 빈칸을 영화가 상상력으로 채울 때, 사실과 가설의 경계는 관객에게 얼마나 분명하게 전달돼야 하는가. 지금 이 영화를 두고 말이 많은 이유는 바로 그 경계가 극장 밖에서도 계속 논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확인한 자료

확인한 자료

01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8·15저격사건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977002연합뉴스 - 개봉 나흘 만에 100만 관객 돌파https://www.yna.co.kr/view/AKR2026092603030000503연합뉴스 - 추석 연휴 관객 1위https://www.yna.co.kr/view/AKR2026092804680000504연합뉴스 - 제작진 고발 및 반론https://www.yna.co.kr/view/AKR2026092904550000405연합뉴스 - 제작진 입장https://www.yna.co.kr/view/AKR2026092815420000506씨네21 - 허진호 감독 인터뷰https://cine21.com/news/view/?mag_id=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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